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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인권> 읽기 (재창간 이후)/제13호 (2013)

발간사 ; 우리 삶이 놓인 지형을 응시한다는 것 / 배정훈, 오현정


13호 발간사.pdf


우리 삶이 놓인 지형을 응시한다는 것

배정훈・오현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학회장

공익과 인권 은 우리 사회의 그늘과 그 그늘을 드리우는 권력을 탐구합니다. 그늘에

가리어져 희미하게 들리는 귀중한 목소리들을 발굴하고 권리의 언어로 번역하여, 그 이

야기들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공익과 인권 은

현존하는 법의 언어와 제도를 공익과 인권의 관점에서 날카롭게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새

로운 틀을 상상하여 그려보고자 합니다. 지금, 여기 ― 우리는 13번째 책, 학생 주도 발

간으로 재창간한 이후로는 4번째 책을 발간하며, 그간 이 책에 담겨온 이야기들, 그리고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누어진 이야기들을 가만히 돌아보며 다시 하나의 긴 이야기

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에서 발간해 온 공익과 인권 은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을

맞아 2010년 학생 주도 저널로 전환하였습니다. 그 이래로 공익과 인권 은 기획부터 편

집까지의 전 과정을 학생들이 주도하면서, 폭넓은 주제, 새로운 시선, 창의적인 접근을

담은 공익 인권 분야의 법학 전문 저널을 지향하여 왔습니다.

공익과 인권 이 오늘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자라게 된 토대이자 계기가 되어준 것

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인 만큼, 본지는 법학전문대학원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아 왔습

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기획된 새로운 법학 교육과 법률 실무가

양성의 터전이며, 공익과 인권 이라는 저널 그 자체, 그리고 저널을 만드는 사람들이 처

해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맥락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법학전문대

학원이라는 공간은, 다양한 배경과 생각, 개성을 가진 예비 법률가들의 만남의 장인 동시

에, 제도의 문제점을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에 떠맡김으로써 획일적인 규율을 강요하

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공익과 인권 은 이러한 양극의 긴장 사이에서 어렵사리 얻어

낸 귀중한 결과물이고, 법학전문대학원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가능성의 터전이

자, 한계와 모순을 노정하고 있는 연약한 지반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5년이라는, 지난 성과와 과오를 냉철하게 돌아

보면서 현안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시점에 이르러, 이번 호에서는 사정상 지난 호에 싣지

못한 ‘공익인권 법무’ 특집을 꾸리게 되어 의미가 깊습니다. 이 특집에서는 법학전문대학

원 설치 이후의 공익인권법무 실무계의 생생한 목소리를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 공익 인권 특성화를 표방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구체적인 교육 현

장에서 학생들이 쏟아낸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호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다양한 주제에서 실천적 고민을

담은 학생들의 글입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샅샅이 추적하고 기록하는 오

늘날, 수사기관에 의한 ‘정보 인권’ 침해 가능성을 예민한 감각으로 다루고, 소수자 인권

의 관점에서 헌법재판제도의 개선 방안들을 짚어내는 등 국가 기관과 제도의 문제에 대

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도 하며, 분단 체제의 모순이 만들어낸 인권 사각지대에 처한 재

중 탈북자의 보호와 북한이탈주민의 병역 문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저자들의 예리

한 문제제기와 분석은, 시민사회와 국제기구라는 공익인권의 현장에 참여한 소중한 경험

과 함께 이번 호 공익과 인권 을 수놓고 있습니다.

꼬물꼬물 움트던 파릇한 봄잎이 가을볕에 노랗게 물들기까지,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

어 놓기 위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온 편집위원님들께, 품어온 귀중

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신 저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 편의 글을 위해 달려온 각자의 시간들이 나름의 결을 간직한 채 한 자리에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를 빛내는 것을 보는 설레임을 담아,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넵

니다.

모든 이들의 사랑과 행복과 생을 위해 가장 절실한 한 마디를 건져내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우선 직면해야 할 일들은 ― 결국 우리가 밟고 서있는 삶이라는 지면의 거친 표

피와 굴곡진 지형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는 것, 이 삶의 굴곡과 저 삶의 굴곡이

만나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서로 감싸며 생겨나는 열기를 가슴 깊이 담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이 한 권 한 권 쌓여가는 높이만큼의 시간동

안 문장과 문장 사이에 켜켜이 쌓인 그 모든 고민들이 소통되며 진솔하게 빛나기를, 근본

적이고,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실천의 집적으로 이어져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