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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인권> 읽기 (재창간 이후)/제12호 (2012)

현장연구 ; 4 3 집단학살 마을의 공간성 구성과 서브알턴들의 목소리 - A리 조사에 대한 포스트-식민 이론적 해석 / 강민구,김기담,김푸른솔,김현경,신수연,오현정,장윤호,전진원,조연민,한효명

 

12-01-강민구,김기담,김푸른솔,김현경,신수연,오현정,장윤호,전진원,조연민,한효명(2012)-현장연구 ; 4 3 집단학살 마을의 공간성 구성과 서브알턴들의 목소리 - A리 조사에 대한 포스트-식민 이.pdf

 

■ 국문초록 ■
스피박의 “서브알턴(subaltern)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본고는 ‘마을’이라는 공간성의 차원에서 서브알턴‘들’의 발언이 의미있게 독해될 수 있다고 답한다. 구체적인 공간성이 구성되고 변동하는 차원에서 포스트-식민적 구조와 개별 행위자를 사고할 때 비로소 서브알턴들에 대한 두터운 묘사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구술사 증언 연구의 만남이 ‘구조’ 또는 ‘개별 행위자’ 또는 양자의 관계에만 주목하게 되면, 서브알턴들의 목소리가 생산되고 또 그것을 생산하는 구체적인 지형은 사라지게 된다.

기존의 4 3 연구에서 두드러지는 연구 경향은 구체적 ‘공간성’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제주에 대한 묘사가 부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4 3의 경험과 기억은 철저하게 단일화된 ‘제주도’의 단위로만 탐구됨에 따라 공간적 지형학의 구성과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물화’된 범주를 상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제주와 육지를 나누는 담론 속에서 4 3을 동질화하는 순간 서브알턴의 목소리는 곧 구조의 목소리 또는 구조로 호명되어야만 하는 목소리가 되어버리는 모순이 발생한다. 다른 한편으로 구술사 증언 연구를 ‘생애사’로 이해할 때에도 이와 같은 공간성이 사라지는 역설은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본고는 공간성의 구성과 변동이라는 시선에서 4 3에서의 서브알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서브알턴의 목소리는, 현재까지도 삶의 기초적 단위인 ‘마을’을 중심으로 물리적, 상징적 범주의 구성과정을 거치며 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 범주의 구성과 변동 과정을 살펴본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강점을 가진다. 첫째, 기존 연구들이 현재의 ‘분열’을 이야기할 때 ‘주어진 것’으로 파악되는 ‘분열의 이유’를 조명할 수 있다는 것, 둘째, ‘분열이 어떤 위치 속에서 나타나는가’라는 동적 구성과 변화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간성에 대한 강조는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권력 이론으로 해석하고
자 하는 의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식민주의 시기에서 지금에 이르는 시 공간성의 변화 속에서 서브알턴의 목소리는, 그것이 억압되었던 순간은 물론 발화하기 시작한 순간에조차, 포스트-식민성을 둘러싼 다양한 권력들의 중층작용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4 3 당시 집단학살을 경험한 마을인 A리에 대해 집중적인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구성주의적 관점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으로 해석 및 적용하여 본 결과이다. 이 논문은 기존의 4 3 연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마을’이라는 공간성의 구성과 변동이라는 시각을 취함으로써, 시간성의 변화와 맞물려 다양한 권력 주체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며 서브알턴과 관계를 상이하게 맺어가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밝혀낸다. A리의 경험은 인근 B리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동되고 있었으며, 국가/우익, 특별법, 기념관, 유족회, 귀향과 인적 구성의 변화 등 새로운 내외 지형의 변화에 따라 A리 서브알턴들의 목소리가 상이하게 구성되고 있었다. 이 논문은 나아가 공간성 속의 균열들의 이면에 놓인 ‘균형’, 그리고 그 균형축의 ‘변화’를 분석결과로 제시한다. 나아가 이 논문은 구체적인 공간적 지형학의 권력관계 구성틀이 깊은 균열들 속에서도 역설적인 균형을 어떻게 내적, 외적으로 생산하는지에 대해 그 구체적 결들을 드러낸다.

본고는 결론적으로, 서브알턴들의 목소리가 주체와 구조 어디로도 환원되어서는 안 되며, 구조와 주체 모두가 놓인 지형학의 변동에 주목할 때야만 생생한 설명이 가능함을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스피박의 앞서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서브알턴들의 목소리는 어떤 지형학의 변동 속에서 발화되며 발화하고 있는가?”

* 주제어 : 서브알턴, 포스트-식민주의, 구술사 증언연구, 제주, 4 3, 공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