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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인권> 읽기 (재창간 이후)/제12호 (2012)

특집 I 법과 주체의 조명 ; 가정폭력 피가해자의 탄생 - 가정폭력 피해자의 처절한 사적 구제 / 앙현아, 김현경

 

12-03-양현아,김현경(2012)-특집 I 법과 주체의 조명 ; 가정폭력 피가해자의 탄생 - 가정폭력 피해자의 처절한 사적 구제.pdf

 

■ 국문초록 ■
가정폭력 피해자가 오랜 가정폭력에도 불구하고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다가 가해자를 사망케 함으로써 도리어 가해자가 되어 ‘법 앞에 섰을 때’ 법은 이 복합적 주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리 법과 법정은 이러한 주체성을 다룰 시각과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이 복합적 주체를 “피/가해자”라고 이름 붙이며 이러한 질문을 시론적으로나마 다루어 보고자 한다.
법원이 가진 피/가해자에 대한 시각은 우선 정당방위와 심신장애 판단에서 드러난다. 정당방위 판단에서 법원은 동등한 힘을 가진 남성을 그 주체로 상상함으로써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진 ‘방위의 감각’을 배제하여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가정을 ‘사랑의 공간’으로만 추상적으로 상정함으로써 그 공간 안에서 실제적으로 신음해 온 피/가해자에게 가정 내 공격에 대한 사회 윤리적 제한을 이유로 방위행위의 상당성을 부정한다. 한편 심신장애 판단에서는 미국의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을 수용하지만, 피/가해자의 ‘피해자성’에만 천착함으로써 능동적으로 행위했고 행위하는 피/가해자의 주체성은 도리어 고의적 살인 행위에의 추정을 강화시키게 된다.
피/가해자의 주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가정폭력 피해 경험을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피/가해자는 학습된 무력감을 겪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법과 국가의 부재 속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폭력의 순환을 감당했던 것이다. 현재 ‘가정폭력방지법’은 가정 보호를 그 목적으로 삼아 보호가치를 혼돈하고 있으며,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은 가정폭력을 용인하고 사소화함으로써 적절한 구제를 행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은폐된 사적 공간 안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이해되어야 하지만, 공/사 영역 이분법과 가족주의 하에서 오히려 사소화되고 용인되어 왔다는 점에서 법과 국가의 대응은 가정 공간에 대한 왜곡된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 결과, 법적 구제의 바깥에 놓인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이를 종결지을 어떠한 방도도 찾지 못한 채 최후에는 가해자를 살인하는, 강요된 선택에 이르게 된다. 이 점에서 피/가해자의 선택은 법적 절차가 정지한 곳에서 행한 ‘처절한 사적 구제’라고 본 연구자들은 해석한다. 때문에 피/가해자를 마주하는 법과 국가는 이러한 피/가해자가 다시는 출현하지 않도록, 성찰적 자세로 가정폭력에 대한 실무적 대책에 부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피/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그 복합적 주체성을 해독하여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법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주제어 : 가정폭력, 피/가해자, 피학대여성증후군, 정당방위, 심신장애, 여성의 목소리, 주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