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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인권> 읽기 (재창간 이후)/제17호 (2017)

격려사 / 양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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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공익과 인권> 제17호 출간 격려사


양 현 아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


    2017년 가을,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공익과 인권> 제17호를 출간해 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구성원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리고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일원으로서 출간을 자축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쁩니다.


    본 호에는 여러 편의 논문과 대법원의 판례 평석,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 분석 그리고 번역까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게재될 논문들을 살펴보면서 제가 느낀 점들을 몇 가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격려사를 갈음할까 합니다.


    먼저, 주제의 참신성과 다양성이 두드러집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근로자와 자영인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들인 특수형태근로자 -학습지 판매회사의 교육상담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 운전기사 등-에 대해 차분하게 고찰하는 글(배지연)이 있습니다. 또한, 비공식 부분 가사 사용인에 관한 글(전효빈) 역시 노동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온 ‘인권사각지대’의 존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공립학교 경비노동자의 야간근무에 대한 근로시간의 인정이라는 ‘숨겨진 문제’를 발굴하여 치열하게 분석하고자 한 글(박지아)도 눈에 띕니다. 이러한 특징에서 볼 때, 이번 <공익과 인권> 호에는 인권사각지대의 경계인들을 인권의 주체로서 다루고자 하는 예리한 지성과 따뜻한 감수성이 녹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2년 <공익과 인권> 제12호에서 ‘법의 주체’에 관한 특집을 구성하였는데, 이번 호에서는 법의 주체 논의를 한층 더 심화하고 다변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기존의 인권연구의 담론스타일을 넘어서는 연구도 고무적입니다. ‘오버워치’에서의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폭력적 언설을 문제시한 글(범유경, 이병호, 이예슬)에서는 ‘특수한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문제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앞의 논문들 이 새로운 법의 주체성을 조명했다고 하면, 위의 글은 새로운 법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해당 공간의 언어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공간이 달라지면 관련 법의 문법, 인권의 문법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흥미와 고민을 동시에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 급증하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한국인의 삶에서 SNS 상의 활동이 차지하는 증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앞으로 가상 현실에서 발생하는 인권과 폭력 문제 등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 공익’이라는 개념으로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사건을 다룬 접근(박형근)도 향후 보다 발전시켜야 할 공익법의 과제라는 데에 적극 공감합니다.


    셋째, 본 호에는 여러 사람들이 공동작업을 행한 ‘대작들’도 눈에 띕니다. 기본권판례연구회(권준희, 김대욱, 김미영, 양지애, 이민주, 정지혜)의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규제의 기본권 침해 연구는 대법원 판결을 다각도로 분석한 ‘긴 호흡’을 가진 연구라고 평가합니다. 군 자살자에 대한 국가보훈 및 국가배상 연구 역시 여러 필자들(김민영, 김윤진, 신주영, 이도감, 정동일, 지재욱)의 공동작품입니다. 후자의 글은 최근 묻혀있는 군대 내 인권문제가 주요한 사회의제로 부상하면서 제기된 군대내 자살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배상에서의 과실상계 등을 포함하여 실정법의 이슈이면서도 사회학적인 이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실, 현재사회의 여러 문제들은 점점 더 탁월한 단독 플레이어라기보다 우수한 공동플레이어들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사회가 직면하는 사회문제 중에서 하나의 학문분야 혹은 하나의 시각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고 보이지 않으니까요. 가령, 인구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지구 온난화 완화를 위해 한국시민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에 비해 가진 힘이 적다고 할 때, 어떤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한국의 분단상황에서 평화정착이란 어떤 복합적 노력을 요하는가 등과 같이 중요하고 큰 문제들 그리고 현실적인 의제들은 모두 학제적 접근을 요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학제적 접근 (interdisciplinary 또는 multidisciplinary 또는 transdisciplinary approach)가 필요하다 봅니다. 여러분들의 공동연구가 이런 복합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 크게 격려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현재 우리사회에서 간과할 수 없는 커다란 인권 쟁점인 ‘성소수자’와 관련한 두 편의 글이 실려 주목됩니다. 동성혼 무효사유와 관련하여 ‘혼인의 합의’ 개념에 대한 해석론을 분석, 비판한 판례평석(김 강)과 성 소수자 가출청소년의 보호 지원을 위한 법정책적 개선방안을 연구한 글(김시은)이 있습니다. 전자의 글은 ‘혼인의 합의’에 대한 법원의 자의적 해석에 대해 비판하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동성결합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 결합에 대한 법적 사유(내지 그 해체)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자의 글은 청소년 쉼터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청소년 성소수자라는 또 다른 ‘숨겨진 존재들’을 부각시키면서 관련 정책의 개선이라는 제도설계의 마인드에 서 있는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판례나 논문 등과 같은 전통적인 법학연구의 자료들 뿐 아니라 신문, 단체와 위원회 등의 게시판 등 다양한 자료들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이외에도, 이번 호에는 법학전문석사과정 학생들 뿐 아니라 학부생의 참여도 눈에 띄어 반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셸 알렉산더(Michelle Alexander)의 제 30회 조지 켄트(George E. Kent)강연의 강연문의 번역문(김상오, 김철환)도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이 강연은 알렉산더 교수의 저서 <새로운 짐 크로우 : 인종맹목 시대의 대량투옥(The New Jim Crow : Mass Incarceration in the Age of Colorblindness)>로서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이른바 다문화주의, 난민의 증가, 초국적 인신매매의 사례 등을 고려할 때, 이 글은 한국사회의 숨겨진 인종차별주의와 차별에 대한 무감각에 대해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성혐오’ 현상과 함께 젠더폭력이 두드러지는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 또는 배제 현상에 대한 주의 환기의 의의도 있다고 보입니다.


    어쩌면 공익과 인권의 의제에는 이렇게 문자로 다가가기에는 어려운 마음과 정서, 아픔과 고통이 서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런 마음과 정서, 아픔과 고통을 문자로 표현하는 노력도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여름, 이런 귀한 ‘다른 목소리들’을 담아내느라 비지땀을 흘렸을 필자, 편집자, 그리고 인권법학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다시 한번 축하와 사랑의 마음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