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익과 인권> 읽기 (재창간 이후)/제17호 (2017)

발간사 / 박아름·신주영

17-00-발간사(박아름, 신주영).pdf



<공익과 인권> 제17호를 발간하며


박아름・신주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학회장


    작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공익과 인권> 제16호 출간기념회를 치르고 이틀이 지난 2016년 10월 29일, 인권법학회 회원들은 함께 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제1차 촛불 집회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거대한 촛불의 물결에 동참하며 수만의 목소리를 들었고 서로의 음성을 통해 전해지는 분노와 결의를 느꼈습니다.

    그 후 한 해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촛불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고 대한민국 헌정사는 요동쳤습니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습니다. 청와대는 새 주인을 맞았습니다. 보수 정권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낙인 찍혔던 예술인들이 비로소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분노와 절망은 안도와 환희로 변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숨이 잦았던 술자리들에서 이제는 시대를 낙관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낙관을 접어두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성 소수자 군인을 색출하려는 육군의 기획 수사 아래 A 대위가 구속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동성간 합의된 성관계조차 범죄로 규율하는 군형법상 추행죄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세 번째 합헌 결정을 받았습니다. 지난 5월에는 한 달 사이 이주노동자 4명이 양돈장에서 작업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최소한의 휴식과 휴일도 보장받지 못한 채 생존까지 위협받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에서는 특수학교 설립이 주민들의 반대에 가로막혔습니다.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읍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장애에 대한 조롱과 야유,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짓밟힌 그들의 인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 공존하는 빛과 어둠 중 우리는 어둠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둠 속 처연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분노해야 합니다. 그 힘으로 싸우고, 또 싸워야 합니다. 동네에 특수학교가 세워지는 것을 환영하는 시대, 이주노동자가 핍박받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시대, 성적지향에 따라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는 시대는 결코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그 시대는 절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싸움은 그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공익과 인권> 제17호는 더 나은 시대를 맞이하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글을 써내고 편집위원은 글을 다듬어내기를 여름내 반복했습니다. 이 책 한 권에는 수십 명의 사유(思惟)가 녹아 있습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공익지향성과 인권감수성, 시대적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번뜩이는 자극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통렬한 반성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대한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익과 인권>은 더 많은 사람이 읽을수록 더 강한 무기가 되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갈 것입니다. 올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인권법학회의 고민과 열정을 활자로 세상에 내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