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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과 인권> 읽기 (재창간 이후)/제15호 (2015)

발간사 / 김덕현・장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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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전짜리 두 개와 인권인간이라는 자격에 대하여

 

김덕현장시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학회장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 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 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장편(掌篇)2, 김종삼

 


    많은 법률가들이 이 시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이 시를 소개하며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달픈 삶을 살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는 많은 국민들에 대한 다짐을 밝혔고, 현 검찰총장은 검찰 간부회의에서 이 시를 낭독하며 편견과 오해 등으로 인한 차별과 무시 속에서도 당당한 자세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문득, 이 시를 읽으면서 권리의 자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직 십 전짜리 두 개가 있기만 하면, 조선총독부 하에서든, 거지소녀든 거지장님이든, 주인영감이 소리를 지르든, 그 밖의 사정이 어찌되었든 간에 밥집에서 두 그릇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내, ‘인권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떤 정치권력 하에서든, 형편이 어떠하든, 누군가 그를 보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든 말든, 인간이라는 자격만 있으면 응당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 말입니다.

    이번 공익과 인권 15호는, 누구나 인간이라는 자격만 있으면 공무담임권, 선거정보접근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자기결정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임금채권을 보장받을 권리, 노동권, 환경권 및 건강권, 혐오 표현을 당하지 않을 권리, 신체의 자유, 평등권, 표현의 자유, 형사절차에서의 방어권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어리든, 시각 장애가 있든, 집회 중이든, 여성이든, 복잡한 현대형 소송의 당사자이든, 해고되었든,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이든, 비도시 계획관리지역에 살든, 소수자로 분류되든, 정신장애가 있든, 성소수자이든, 학생 신분이든, 피의자 신분이든’, 모두 다 엄연히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 담긴 구체적인 주장들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지난 호 공익과 인권노동가족에 대한 생각들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정리해고와 실업 문제, 임금 등에 대한 정부 정책이 최근 제시되고는 있지만, 과연 노동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하여 기업의 법적 책임을 묻거나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을 언급하는 것은 아직까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만 느껴집니다.

    그래도 세상은 바뀌고 있고, 그 안의 삶들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 소개되었던 미국 동성결혼 판결들의 내용이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미국 연방 대법원 판례로 구현되었습니다. 비록 한 국가에서의 변화입니다만, 분명 여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울림과 질문을 남긴 변화였습니다.

    이번 호 공익과 인권에는 시민단체 활동가, 변호사, 여러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의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학업과 실무활동 등에 바쁠 텐데 글을 쓰거나 편집을 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들을 종종 듣곤 합니다. 이제 곧 발간을 앞둔 글들을 읽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과 편집위원들이 정성들여 한 문장 한 문장을 다듬어갔던 이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공익과 인권이 공익과 인권을 사랑하는 여러 법학도, 법률가, 시민들의 자유로운 연대의 공간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