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년 < 공익과 인권 > 제16호 출간 격려사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먼저 <공익과 인권> 제16호의 발간을 축하하며, 염천 더위 속에서 분투했던 ‘인권법학회’ 구성원과 필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통상 자본주의 세상은 ‘사익’과 ‘물권’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리하여 시장법칙의 이름하에 이윤과 효율이 정의의 유일한 기준인 냥 숭배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법학을 공부한 이들 중에서 이런 논리에 충실한 사람들은 더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스 철학자 트라시마코스의 말을 변형하자면, “정의는 강자와 부자의 이익”일 뿐일까요? 약육강식의 시대에 ‘공익’과 ‘인권’을 고민하는 것은 식자(識者)의 지적 사치와 호사(豪奢)에 불과할까요? 영화 <내부자들>(2015)의 주인공 깡패 안상구(이병헌 분)은 이렇게 물었지요.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 한 것이 남아있는가?"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1987년 헌법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안착되었지만,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은 어렵습니다. 1997년 도래한 ‘IMF 위기’는 한국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위기의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과 재벌의 방만한 부실경영이었지만, 고통은 고스란히 평생 열심히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 몫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직장에서 해고되었고, 집이 날라 가고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IMF 체제’가 종료된 지 오래지만, ‘신자유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재벌공화국’은 더 공고화되었습니다. 영국 법사학자 헨리 메인의 개념을 빌리자면, ‘계약’의 형식을 빌려 ‘신분’이 되살아나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대선 시기 여야 후보는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외쳤지만, 선거가 종료한 후에는 모두 구두선(口頭禪)이 되었습니다.
한편 사회경제적 약자 중에서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은 이중, 삼중의 편견과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꿈과 특성을 무시한 다수결은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휴전선 북쪽의 ‘병영국가’에서는 자본주의적 기준의 인권은 물론 사회주의적 기준의 인권도 실종되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야만’이라고 불리어야 마땅한 범죄가 국가나 권력 집단에 의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익’과 ‘인권’을 위해 모인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시대와의 불화”(루카치)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우울해하지도 마십시오. 조급해하지도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의 운명을 사랑하십시오!”(amor fati) ‘법비’(法匪)가 되길 거부하여 맞이하게 된 ‘운명’을 같이 ‘실천’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별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서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적습니다. “우리 인간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이 되진 말자.”[영화 <생활의 발견>(2002)] 모두의 건강, 건학, 건투,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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